강관유통업체인 강림CSP는 1976년 설립된 1세대 창업기업으로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국내 파이프 시장의 성장을 이끈 중견업체다. 강림CSP 일찌감치 도요타의 JIT시스템을 도입해 사업을 번창시켰으며 현재의 위치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강림CSP의 임수복 회장의 선견지명과 그가 걸어온 삶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 생업전선에 뛰어들다
임 회장은 어린 시절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일본 조선소에 근무했던 아버지가 어느순간 사업에 뛰어들면서 부터 상황은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에 취해 있었고 어린 임 회장은 뭐라도 팔아야겠다는 생각에 거리로 나갔다. 주산을 잘 했던 그는 주산책을 만들어 팔며 생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했다. 그 후 고등학생이 된 그는 졸업 전 공무원이라는 첫 직업을 갖게 됐지만 벌이가 마땅치 않다는 생각에 한 철강회사에서 경리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철강과의 끈질긴 인연이 시작됐다.
월남전 참전에서 운좋게 생존
하지만 곧이어 그는 군대에 자원에 입대를 하게 됐다. 신경쇠약증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산 선수로 활동한 이력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한 자대에 배치될 뻔도 했지만 의사의 도움으로 공병에 지원해 하루종일 작업장에서 노동을 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격한 노동도 그에게 맞지 않았고 이내 위생병 훈련을 받은 뒤 위생병으로 군 복무를 시작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월남전에도 참전했다. 위생병으로 복무했던 그는 운이 좋아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 날들의 기억은 그를 한참을 괴롭혔다.
우연한 사업의 기회
군대에 제대하던 날 임 회장은 다시 철강회사에 입사했고 6년 간 모든 일을 마다않고 낮은 자세로 열심히 임했다. 그 후 사업에 대한 기회는 우연찮게 찾아왔다. 다니던 회사와 거래처 사이에 큰 불화가 생겨 둘 사이의 거래가 끊긴 것이다. 그리고 당시 영업부장이었던 임 회장에게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거래처 측에서 임 회장이 독립한다면 일감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1976년 강림파이프라는 회사를 세웠고 그는 회사에서 그랬듯 낮은 자세로 일했다. 사업 초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의 낮은 자세와 영업력을 곧 빛을 발했고 회사는 점차 성장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