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을 운영하던 약사에서 1조원 규모 대기업 대표가 된 인물이 있다.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생으로 한미약품 임성기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임 회장은 월남전이 한창이던 시절 드물게 성병 약품을 취급하는 약국을 개업했다. 이후 임 회장의 약국은 서울 3대 약국으로 손꼽히게 되었고 약국을 운영하며 번 돈을 자금삼아 한미약품을 설립했다.
R&D는 나의 목숨과도 같다는 창업주
한미약품은 90년대까지 특허기간이 끝난 해외 의약품을 복제해 회사를 키웠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신약 기술 개발에 힘써 국내 최초 개량신약 아모잘탄, 아모디핀을 만들었다. 한미약품은 1989년 국내 최초 항생제 ‘세프트리악손’을 만들며 해외에 수출을 시작했다. 이 같은 수출실적은 한미약품이 R&D 투자를 중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보통 제약사가 매출의 5~7%를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것에 그치는 반면 한미약품은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했다.
당시 유동성 위기를 걱정하던 주위의 시선과 달리 한미약품은 공격적인 기술개발 투자로 계속해서 신약을 만들어냈고 8조원 이상의 수출실적을 냈다. 현재는 국내 제약 시장의 기반을 다진 기업으로 손꼽힌다. 최근에는 매출의 20%까지 기술개발에 투자하며 기술개발에 대한 의지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최초 약품 제조 기술 수출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사 최초로 약품 제조기술을 판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글로벌 제약기업 로슈, 노바티스 등에 기술을 이전했다. 당시 국내 제약사들은 대게 자금력이 부족하여 임상 3상까지 투입되는 수천 억원의 비용을 지불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기술개발을 하고도 판로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임 회장은 기술 수출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실행하며 성장 발판을 만들어냈다.
해외에서도 독보적인 성장세
임 대표는 항상 개혁을 만들어내는 인물이었다. 일례로 중국 출장 중 성인 약을 쪼개 어린이약품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어린이의약품 생산에 뛰어든 사례가 있다. 특히 중국의 1가구 1자녀 정책이 본격화되며 중국의 어린이 약품 시장이 크게 확장되었고 그 결과 한미약품은 중국 어린이 약품 시장을 선도할 수 있었다. 한미약품은 중국 법인인 북경한미약품을 만들었고 어린이 정장제 ‘마미아이’를 출시해 마미아이만으로 연매출 800억원을 달성하며 중국에서도 성장을 거두었다. 중국에서만 2500억원이 넘는 매출을 달성하며 중국에서 독보적인 제약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