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알아야 할 비즈니스 뉴스레터 지식비타민 한국, ‘R&D 패러독스’를 극복해야
한국, ‘R&D 패러독스’를 극복해야 한국, ‘R&D 패러독스’를 극복해야 미국과 아시아의 상금 격차 MZ 소득증가·부채감소 정책 필요 코로나 속 ‘대한민국의 삶’ 변화 코로나 속 ‘대한민국의 삶’ 변화 코로나 속 ‘대한민국의 삶’ 변화 코로나 속 ‘대한민국의 삶’ 변화 코로나 속 ‘대한민국의 삶’ 변화 더 많은 통계는 앱에서 보기
해외에서 활약하는 기타 제조기업, 크래프터 기타 코리아 1972년 설립된 국내 1위 기타 제조사 크래프터 코리아는 통기타 황금기였던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성음기타로 입소문을 타며 번성했다. 창업자 박현권 회장, 그의 아들 박인재 대표, 손자 박준석 대표까지 3대에 걸쳐 가업이 이어지며 40개국에 기타를 수출하는 연 200억원의 매출을 내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정성을 가지고 만든 기타는 다른 나라에서도 팔린다 창업주인 박현권 회장은 젊은 시절 목사를 꿈꿨다. 전남 목포에서 신학대학을 다녔던 박 회장은 다니던 대학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자 기타 공장에 취직하면서 기타와의 인연을 시작했다. 박 회장은 언젠가 독립하여 본인의 브랜드를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회사를 다니면서 악기상과 연주자들의 의견을 들으러 다녔다. 다소 비싸더라도 고품질의 기타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박 회장은 4명의 기타 장인과 함께 성음기타를 개발해 1972년 창업에 도전했다. 당시 기타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박 회장이 설립한 성음악기는 업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성음악기의 기타는 경제적인 가격에 비해 내구성이 좋아 기타 연주자들의 주목받았고 없어서 못파는 기타 브랜드로 인식됐다. 기타의 유행도 잠시, 1980년대 말부터 국내 음악의 트렌드는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통기사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자 이를 견디지 못해 업종을 바꾸거나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기타 제조기업이 생겨났다. 이에 성음악기의 2세 경영인 박인재 대표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박 대표는 80년대 말 '크래프터' 브랜드를 출시해 '메이드 인 코리아' 기타를 수출하며 글로벌 시장 개척에 나섰고 크래프터 기타는 40개국으로 수출되며 브라질과 영국에서 1~3위의 점유율을 가진 기타 브랜드로 성장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기술과 품질에 대한 고집이 만든 기회 창업주인 박 회장의 경영철학을 그대로 이어 받은 박 대표는 기타의 높은 품질을 고집했다. 기타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최고의 원료라며 미국, 캐나다 등에서 최고의 목재를 구입하는 등 아낌없이 투자했다. 구입한 목재를 2, 3년 간 자연건조하는 과정을 거쳐 변형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공했으며 이를 통해 기타의 퀄리티를 한층 더 높일 수 있었다. 품질에 대한 고집은 해외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높은 품질을 알아본 해외 거래처들이 먼저 크래프터 기타를 찾아올 정도였으며 이후 해외에서도 유명 기타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새로운 방식을 택하다 3대로 가업을 이어 받은 박준석 대표는 새로운 유통망을 구축하는 한편 디자인 부문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크래프터 코리아는 독보적인 국내 1위 기타 생산 기업이지만 값싼 중국과 인도네시아산 기타가 무섭게 뒤를 따라오고 있어 위협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박 대표는 크래프터 기타의 품질을 지키면서도 기타의 이용자와 소통을 늘리고자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에 한정판 제품을 판매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며 크래프터 기타의 뒤를 이어나가고 있다. ![]() ![]() 아시아비즈니스동맹(주) knowledge_vitamin@naver.com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310 (역삼동, 유니온센터) 810호 02-562-6578 수신거부 Unsubscri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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