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량난을 겪던 시절, 농기계 회사를 설립해 이를 해결한 기업이 있다. 바로 국내 최초 농기계 제조업체 아세아텍이다. 1945년 설립된 아세아텍의 전신인 아세아산업공사는 국내 농업근대화를 이끌어온 기업으로 손꼽히며 현재는 연 매출 5,000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농기구에서 농기계까지, 정부기관에 납품하며 빠른 성장
아세아산업공사가 설립될 당시 국내에서는 여전히 손으로 농사를 짓고 소가 느릿느릿 밭을 일구는 방식이 흔했다. 아세아산업공사는 당시 쟁기, 분무기 등 단순한 농기구를 제조해 판매하기 시작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농기구를 넘어 경운기, 양수기 등의 농기계로 영역을 넓히며 사세를 확장했다. 특히 정부기관에 대규모 납품을 하면서 회사 규모는 전국적으로 커졌다. 아세아텍이 정부기관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1970년부터 구축한 품질관리 종합시스템 덕분이다. 회사가 제조해 납품한 제품에 대해서는 끝까지 품질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정부로부터 품질관리지정업체 및 농업기계제조업체로 선정됐다. 1980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아세안텍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로 작용했다. 특히 농사를 그만두고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농촌의 부족한 인력을 메꾸는 데에 아세안텍의 농기계가 많이 사용됐다.
현장에 필요한 제품만 공급하며 차별화, 위기도 있었지만
기술력 향상뿐 아니라 제품 개발에 있어서도 차별화를 꾀했다. 농업용 디젤엔진을 개발했으며 동력이앙기 개발에도 성공했다. 국내 최초로 과수 재배 생력화를 위한 기계 개발도 마쳤다. 특히 아세아텍은 지역별로 각기 다른 토지 상태와 농법 등을 고려해 제품을 개발한다. 기능이 많은 농기계보다는 현장에 꼭 필요한 기계를 개발한다는 것이 이 회사가 가진 철학이다. 이 밖에도 비닐피복기, 중경제초기, 파쇄기, 제설기 등의 기계를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관리기 분야에서는 높은 시장점유율을 확보했다. 주력 제품인 다목적 관리기는 8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위기는 있었다. 1990년 대 IMF가 터지면서 매출은 3분의 1토막이 났다.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공장과 영업소를 팔아 부채를 갚았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 해외 진출을 도모하는 한편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방침을 내세웠다. 1998년 중국 자회사를 세워 영업활동을 시작한 뒤 현재는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 3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